칼럼 | 겨울의 쓴맛이 몸을 살린다 – 울금과 치커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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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이안한의원 작성일26-03-30 12:34 조회16회본문
[정이안의 건강노트] 겨울의 쓴맛이 몸을 살린다 – 울금과 치커리 이야기
주간한국 2025.12.05
겨울의 쓴맛이 몸을 살린다 – 울금과 치커리 이야기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몸은 여전히 쉼 없이 일합니다. 추위에 근육이 수축되고 혈관이 좁아지면, 몸의 긴장도가 올라가고 교감신경이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부교감신경을 도와 마음을 안정시키고, 혈류를 따뜻하게 순환시키는 음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의 흙 속에서 자라난 뿌리식물들은 ‘자연이 준비한 강장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2월의 흙냄새를 대표하는 두 가지, 진도의 울금과 강원 북부산지의 치커리는 추운 계절에 몸의 순환과 면역을 돕는 제철 식재료입니다.
진도의 황금빛 뿌리, 울금
울금은 예로부터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약재로 사용되어 온 식물로, 불교권에서는 상처를 소독하거나 신체 정화를 위한 향신으로 애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따뜻한 기후와 모래 섞인 토양이 적합한 전남 진도에서 주로 재배됩니다. 진도 울금은 11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수확되며, 이 시기 흙 속의 영양이 가장 응축된 ‘겨울 뿌리’로 평가받습니다. 울금은 생강과 같은 근경 식물로, 껍질 안에는 진한 황색을 띠는 커큐민(curcumin)이라는 물질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커큐민은 강력한 항산화, 항염 작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염증 반응을 완화하며, 간에서 독소를 중화시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따라서 스트레스나 피로로 인해 간 기능이 저하되고, 잦은 회식과 음주로 체내 대사가 느려지는 겨울철에 울금은 간 해독과 순환 회복에 큰 역할을 합니다. 또한 울금은 지방의 소화와 담즙 분비를 촉진하여, 느끼한 음식이 많은 겨울철 소화불량과 복부 팽만감을 완화시켜 줍니다.
한의학적으로 울금은 혈(血)을 움직이는 약재, 즉 어혈을 풀고 기운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성질로 분류됩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평한 성질을 지니며, 체내 깊은 곳의 순환을 열어 줍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찬 기운이 체내에 머물러 어깨나 목, 허리 근육이 뻣뻣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지기 쉬운데, 울금은 이처럼 막힌 순환을 풀어주어 몸의 중심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울금의 쓴맛과 향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억눌린 기(氣)의 흐름을 열어주는 작용을 합니다. 한 잔의 따뜻한 울금차는 단순히 소화제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심신이 과열된 현대인에게, 울금은 ‘몸속의 열을 가라앉히고 마음의 열을 식히는 향신 약재’로 작용합니다.
음식 궁합으로는 우유나 꿀, 들기름이 잘 맞습니다. 커큐민은 지용성이기 때문에 기름기와 함께 섭취해야 체내 흡수가 잘 되며, 꿀이나 우유와 함께 끓여 마시면 울금의 매운맛이 부드러워집니다. 또한 생강, 대추와 함께 달여 마시면 소화기 순환과 면역 기능을 동시에 높일 수 있습니다.
겨울의 쓴맛, 강원 북부의 치커리
치커리는 유럽 지중해 지역이 원산으로, 고대 로마시대부터 ‘위장을 돕는 약초’로 재배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 북부 산간지대의 서늘한 기후가 재배에 적합해 주로 인제·양구·철원 일대에서 생산됩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견디며 자란 치커리는 잎이 단단하고 쓴맛이 깊습니다. 그 쓴맛의 주성분인 인트빈(intybin)과 이눌린(inulin)은 바로 이 채소의 건강 비밀입니다.
이눌린은 천연 프리바이오틱스 성분으로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장 건강을 지켜줍니다. 겨울철에는 운동량이 줄고 채소 섭취가 감소하면서 장의 리듬이 무뎌지는데, 치커리는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합니다. 이로 인해 배변이 원활해지고, 장내 독소가 줄어들며, 면역력이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한의학적으로는 ‘쓴맛은 심(心)과 간(肝)에 들어간다’고 봅니다. 치커리의 쓴맛은 간담의 울체를 풀고 담즙 분비를 돕기 때문에, 겨울철 피로감과 무기력, 잦은 소화불량에 좋은 식품입니다.
또한 치커리는 열량이 낮고 수분이 풍부하며, 칼륨과 엽산, 비타민C, 폴리페놀 등 항산화 물질이 풍부합니다. 이 성분들은 혈압 조절과 혈액 순환을 돕고, 겨울철 혈관이 수축해 생기는 두통이나 손발 냉증 완화에 도움을 줍니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 치커리는 차가운 성질을 지니지만 데치거나 볶으면 그 성질이 온화해집니다. 특히 들기름이나 참기름과 함께 무치면 성질의 균형이 맞춰지고 소화 흡수가 원활해집니다.
겨울철 대표 음식인 고기, 전, 탕류 등 기름진 음식과 함께 곁들이면 담즙 분비를 촉진해 소화가 잘되고, 느끼함을 줄여줍니다. 또한 된장이나 식초, 깨소금 등 발효음식과의 궁합도 뛰어나 장내 미생물 균형을 돕습니다. 치커리를 생으로 먹을 때는 겨자·유자·식초를 섞은 드레싱과 함께 먹으면 쓴맛이 부드럽게 완화되고, 따뜻한 국물이나 구운 감자와 함께 먹으면 소화가 더욱 원활해집니다.
몸은 따뜻하게, 마음을 느긋하게
진도의 울금이 몸의 순환을 깨워 속을 덥혀주는 ‘내열의 음식’이라면, 강원 치커리는 간과 장을 깨끗하게 하여 몸속을 맑히는 ‘해독의 음식’입니다. 울금이 피로와 어혈을 녹여 몸을 유연하게 한다면, 치커리는 불필요한 독소를 배출시켜 몸을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두 식재료 모두 결과적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몸의 긴장을 완화하고 심신의 안정 상태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겨울은 단순히 추운 계절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멈춤과 회복’을 선물하는 시기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따뜻한 울금차 한 잔을 마시고, 저녁 식탁에 치커리 무침을 곁들인다면, 몸의 안쪽에서는 조용히 봄을 준비하는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글쓴이
정이안원장-한의학박사, 정이안한의원 원장이며, 자율신경연구소 원장이고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이다. 저서로 안티에이징 시크릿 - 자율신경건강법, 마흔 달라진 몸을 되돌릴때, 생활 습관만 바꿨을 뿐인데, 몸에 좋은 색깔음식 50 외에도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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