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부교감신경을 깨우는 부드러운 미식(美食): 갑오징어와 한치의 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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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이안한의원 작성일26-06-01 13:41 조회1회본문
[정이안의 건강노트] '부교감신경을 깨우는 부드러운 미식(美食): 갑오징어와 한치의 건강학
주간한국 2026.05.30
부교감신경을 깨우는 부드러운 미식(美食): 갑오징어와 한치의 건강학
이제 계절은 여름을 향해 급격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외부 온도가 올라가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혈관을 확장시키고 땀을 배출하는 등 비상 가동을 시작합니다. 이때 몸을 긴장시키고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흥분하게 됩니다. 입맛이 없어지고 음식을 먹어도 체한 것처럼 명치가 꽉 막힌 듯한 소화불량을 겪게 되고, 또한 밤이 되어도 뇌와 신경이 긴장 상태를 풀지 못해 수면 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니 얕은 잠을 자며 밤새 뒤척이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억지로 차가운 음료로 속을 달래거나 수면유도제에 의존하기보다는, 긴장된 교감신경을 가라앉히고 우리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주는 ‘부교감신경’의 스위치를 켜주어야 합니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야 굳어있던 위장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소화액을 뿜어내고, 뇌가 차분히 안정을 찾아 깊은 숙면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자연은 이맘때쯤 지친 자율신경을 위로하고 기력을 보충해 줄 훌륭한 식재료들을 바다 내음과 함께 내어줍니다. 오늘은 6월의 바다가 품어낸 최고의 자양강장제이자, 부교감신경을 부드럽게 깨워 소화와 수면을 돕는 갑오징어와 한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천연 제산제로 위장을 달래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바다의 귀족, 갑오징어
갑오징어는 일반 오징어와 달리 몸통 속에 등뼈 역할을 하는 두껍고 단단한 석회질의 뼈(갑, 甲)를 품고 있어 ‘갑오징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예로부터 그 맛이 깊고 식감이 뛰어나 바다의 귀족이라 불렸으며, 동의보감을 비롯한 여러 의서에서도 그 뛰어난 약효를 높이 평가하여 식재료를 넘어 귀한 약재로 다루어 왔습니다.
갑오징어는 초여름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완벽한 고단백 저지방 식품입니다. 일반 오징어보다 살이 두툼하지만 지방 함량은 극히 낮아 위장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으며, 소화 흡수율이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성분은 갑오징어에 풍부하게 함유된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입니다. 타우린은 피로 물질인 젖산의 분해를 촉진하고 간의 해독 작용을 도와 만성 피로를 물리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인해 뇌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때, 타우린은 신경세포를 안정시키고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하여 우리 몸이 편안한 휴식 모드, 즉 부교감신경 우위의 상태로 전환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의학에서 갑오징어는 성질이 평범하고 맛이 짜며, 피를 보충하고 여성의 자궁 건강을 돕는 보혈(補血) 작용이 뛰어난 것으로 봅니다. 무엇보다 한의학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갑오징어의 뼈, 바로 ‘오적골(烏賊骨)’입니다. 오적골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으로, 위산을 중화시키는 강력한 천연 제산제 역할을 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위산이 과다 분비되어 속이 쓰리고 위궤양이나 위염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오적골은 헐어있는 위 점막을 보호하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명약으로 쓰여 왔습니다. 속이 편안해야 잠이 잘 온다는 ‘위불화즉 와불안(胃不和則臥不安)’이라는 옛말처럼, 갑오징어는 위장의 열과 염증을 다스려 편안한 소화를 돕고, 이를 바탕으로 밤사이 자율신경이 안정되어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게 하는 근본적인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갑오징어의 효능을 극대화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식 궁합은 바로 ‘양배추’입니다. 양배추에 풍부한 비타민 U와 K는 위 점막을 보호하고 재생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갑오징어와 함께 조리하면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부드럽게 데친 갑오징어에 아삭한 양배추를 곁들여 자극적이지 않게 볶아내거나 무쳐 드시면, 자극받은 위장을 어루만지고 지친 교감신경을 다독이는 훌륭한 밥상이 완성됩니다.
심장의 화(火)를 내리고 깊은 잠을 부르는 부드러운 위로, 한치
갑오징어가 묵직하게 위장을 달래주는 식재료라면, 한치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움으로 예민해진 신경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식재료입니다. 다리 길이가 한 치(약 3c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아 이름 붙여진 한치는, 제주도에서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그 부드러운 식감과 감칠맛을 높게 쳐주는 해산물입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부터 여름 내내 가장 맛이 오르는 제철 맞은 한치는 소화력이 떨어지고 입맛을 잃은 초여름 식탁의 구원투수라 할 수 있습니다.
영양학적으로 한치는 오징어보다 조직이 연하고 수분 함량이 높아 식감이 매우 부드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기를 씹어 소화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위장의 기능이 떨어져 있을 때, 씹을 새도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한치는 위장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해 줍니다. 부교감신경이 저하되어 위장의 연동 운동이 멈춘 듯한 상태라도 한치는 쉽게 분해되고 흡수되어 우리 몸의 에너지가 되어줍니다. 또한 한치에는 혈액 순환을 돕고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타민 E와 함께 두뇌 발달과 신경 안정에 도움을 주는 DHA, EPA와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불면증으로 지친 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한치는 차가운 성질을 띠고 있어 초여름 몸속에 쌓이는 열을 식히고 기운을 돋우는 효능이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우리 몸 상체, 특히 심장 쪽에 화(火)와 열이 몰리기 쉬운데, 이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며 밤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한치의 시원한 기운은 위로 솟구친 심장의 열을 아래로 끌어내려 가슴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맑은 진액을 생성하여 몸속의 건조함을 막아줍니다. 열이 가라앉고 심신이 서늘한 안정을 되찾으면, 항진되어 있던 교감신경은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고 부교감신경이 활동을 시작하여 우리를 깊은 숙면의 세계로 안내하게 됩니다.
부드러운 한치를 요리할 때 영양의 균형을 완벽하게 잡아주는 짝꿍은 바로 ‘오이’와 ‘당근’ 같은 신선한 채소들입니다. 특히 오이는 한치에 부족한 비타민 C를 풍부하게 채워줄 뿐만 아니라, 수분이 많고 서늘한 성질을 지녀 한치와 함께 몸속의 열을 식히고 갈증을 해소하는 데 탁월한 궁합을 자랑합니다. 매콤달콤한 초고추장보다는 새콤한 레몬즙이나 식초를 가볍게 곁들인 한치 물회나 냉채로 즐기신다면, 식초의 유기산이 침과 위액의 분비를 촉진해 잃어버린 입맛을 살리고 소화를 도우며 한치의 풍부한 미네랄 흡수율까지 한층 끌어올려 줄 것입니다.
오늘 저녁, 부드럽게 위장을 감싸 안는 갑오징어 요리와 입맛을 돋우고 심신의 열을 식혀주는 한치 냉채로 식탁을 차려보시기 바랍니다. 6월의 바다가 선물한 이 귀한 제철 해산물들이 긴장된 신경을 사르르 녹이고, 편안한 소화와 깊은 달콤한 잠이라는 최고의 보약을 여러분의 몸속 깊숙이 전해줄 것입니다. 건강한 미각으로 자율신경을 다스리며, 활기차고 편안한 초여름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정이안원장-한의학박사, 정이안한의원 원장이며, 자율신경연구소 원장이고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이다. 저서로 안티에이징 시크릿 - 자율신경건강법, 마흔 달라진 몸을 되돌릴때, 생활 습관만 바꿨을 뿐인데, 몸에 좋은 색깔음식 50 외에도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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